“데이터는 한 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품이 아니다”
정부, 4월 ‘2030 BIM 전면 도입’ 실현불가 공식 표명
활용 체감, 시스템 재편, 진입장벽 완화, 생태계 자생 필요
한국건설산업연구원(원장 이충재, 이하 건산연)이 건설이슈포커스 ‘BIM(건설정보모델링) 활성화 저해요인 분석 및 정책 패러다임 전환 방안 - 의무화에서 데이터 흐름으로’를 발간했다.
정부가 지난 4월 공식 표명한 ‘2030년 BIM 전면 도입’ 로드맵의 실현 불가의 원인을 진단하고, 향후 BIM 정책의 방향을 ‘BIM 모델 제출 의무화’에서 ‘데이터가 흐르는 산업 구조 조성’으로, 패러다임 자체의 전환을 이뤄야 한다고 제안하는 것이다.

◼ 현 BIM 정책의 한계 및 문제점
BIM은 건설의 디지털 정보와 프로세스를 통합하는 협업 체계를 구현하고 데이터 기반의 신속하고 정확한 의사결정을 지원해 생산성 향상은 물론 위험 요소를 최소화하고 품질, 안전 및 친환경을 극대화함으로써 건설산업의 디지털화를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정책은 ▷대가기준 정비 ▷행정시스템 ▷전문인력 양성 ▷표준화 등 데이터 연계 기반의 핵심 요소를 충실히 갖추지 못한 채 의무화 일정만 선행한 결과, 구조적 한계에 다다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건산연은 단순히 BIM 기술이나 역량의 부족이 아닌, 경제적 유인이 이루어지지 않는 구조적 모순, 즉 ‘BIM을 굳이 쓸 이유가 없다’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설계자는 시공·유지관리 단계에서 활용 가능한 수준의 상세 BIM 데이터를 구축하기 위해 추가적인 인력·시간·비용을 투입해야 하지만, 이에 상응하는 설계대가의 보전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시공자도 설계 BIM 모델을 인수받더라도 이를 시공에 직접 활용 가능한 수준으로 재가공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추가 비용·시간을 별도로 보전받지 못하고 있다.
발주자도 BIM 성과품의 충실도를 요구하면서도, 성과품의 품질에 상응하는 적정 대가 지급이나 검수 역량 확보에는 소극적인 양상을 보인다. 이는 BIM 도입이 발주자 입장에서 단기적 행정 부담으로 인식되는 경향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 BIM 활성화를 위한 산업계의 대응 동향
건산연은 향후 BIM 정책이 ‘의무화 일정 준수’ 중심에서 벗어나 ‘데이터’의 활용성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BIM 데이터가 시공·유지관리 단계로 원활히 연계되려면 발주청의 활용 의지뿐만 아니라,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후속 체계 구축이 병행돼야 한다는 업계의 지적을 반영한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BIM 데이터의 표준화·품질관리 체계 정립 ▷데이터를 생성하는 자와 활용하는 자 간의 합리적 대가·인센티브 구조 마련 ▷생애주기 전반에 걸친 데이터 연계 플랫폼 구축 등으로 정책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는 게 건산연의 설명이다.
◇공공부문의 BIM 적용 사례 및 시사점
한편 공공부문에서는 정부 정책 설정에 근거해 주요 발주청을 중심으로 양적으로는 BIM 발주를 확대하고 있으나, 각 사업단계 간 데이터 연계에 있어서는 여전히 제한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오토데스크의 ‘BIM 리포트 : 공공 및 민간 BIM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공공 BIM 발주는 지난 2023년 상반기 62건, 2024년 75건, 2025년 79건으로 3년 연속 증가세를 보이고 있으나, 제출된 BIM 성과품이 단순 납품용에 그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철도공단의 경우 2023년 11월 ‘철도 BIM 적용지침’을 제정, 충북선 등 3개 설계사업과 평택오송 등 9개 시공사업 55개 공구에서 BIM을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BIM 객체 단위로 4D 공정관리까지 확장하는 과정에서 현행 공공공사 내역 산정 체계가 5D(공사비 연계) 적용의 한계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은 BIM 객체 정보를 국내 표준 품셈·단가와 자동 연동해 내역서를 생성하는 한국형 BIM 5D 자동화 솔루션(NaviQ)을 개발한 바 있으나, 이는 기술적 보완책일 뿐 행정·내역 체계 자체의 정합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제도적 뒷받침이 요구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도 2018년 ‘BIM 활용 가이드’를 제정한 이후 2024년 6월 ‘공동주택 BIM 적용지침’과 같은 해 11월 ‘공동주택 BIM 설계도면 작성 가이드’를 마련했으나, 데이터 활용 측면에서는 BIM 적용이 설계단계에 국한돼 있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민간부문의 BIM 활성화 자구 노력
민간부문은 공공이 발주청의 의무화 지침을 준수하는 데 맞추는 것과 달리, 실제 수익성과 직결되는 영역에서 BIM의 활용 가치를 스스로 입증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먼저 BIM 데이터를 시공 단계에서 자동으로 활용하기 위한 자동화 도구 개발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설계 BIM 모델에서 시공 데이터를 자동 생성하고 실시간으로 검증, 설계-시공 간 데이터 단절을 기술적으로 보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설계 BIM 모델의 표준성·정합성이 전제될 때 극대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산업계 전반의 데이터 표준 정립이 병행돼야 함을 시사하고 있다.
DL이앤씨는 BIM 기반 터널 발파설계 최적화 프로그램을 자체 개발해 공간정보포털의 GIS 데이터와 터널 BIM 데이터를 연계한 사례가 있으며, 스마트건설얼라이언스 BIM 분과(토목)에서도 OBS-WBS-CBS 체계를 상호 연계·통합하는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또 최근에는 BIM 데이터를 AI 기술과 결합해 단순 모델링 도구를 넘어 ‘지능형 데이터 플랫폼’으로 진화시키는 시도, 발주 의무화 대상이 아님에도 민간 발주자가 자체적으로 BIM 적용을 요구하는 사례 등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중소 설계사·시공사 단위에서는 BIM 도입 자체가 부담으로 작용해 산업계 전반의 격차가 확대되고 있으며, 발주청·설계사·시공사 간 BIM 데이터의 표준·포맷이 상이해 민간에서도 동일한 데이터를 여러 차례 재가공해야 하는 등 여전히 비효율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 BIM 활성화의 데이터 연계의 구조적 문제 진단
건산연은 BIM 활성화의 저해 요인을 체계적으로 진단하기 위해서는 그간 학술·실무 영역에서 축적된 연구 성과를 종합적으로 고찰해 분석의 출발점이 되는 요인군을 객관적으로 도출할 필요가 있다고 내다봤다.
이에 BIM 활성화 저해 요인 도출을 위한 선행연구를 살펴보고 그간 BIM 도입의 한계를 규명하기 위한 학술적 노력은 지속적으로 축적돼 왔으며, 문헌을 고찰한 결과 도출된 초기 이슈들을 유사성에 따라 통폐합, 전문가 5인의 예비 검토를 거쳐 핵심적인 16개 세부 저해 요인을 확정하고 차례로 검토했다고 밝혔다.
먼저 ▷BIM 데이터를 ‘생성·교환’하기 위한 기술적 토대(기술·표준 요인) ▷BIM을 ‘운용’하는 사람과 조직의 역량(운영·인적 역량 요인) ▷BIM 활용을 ‘지속’시키는 경제적 동기(경제적 유인 요인) ▷BIM이 작동하는 ‘제도·시장 환경’(제도·산업환경 요인) 등 4개 대분류를 설정해 BIM 활성화의 전 주기를 포괄하는 데 주력했다.
이를 토대로 BIM 활성화 저해 요인 간의 상대적 중요도를 정량적으로 도출하기 위해 전문가를 대상으로 AHP(Analytic Hierarchy Process) 분석을 수행, 그 결과 ‘경제적 유인 요인’의 가중치가 약 50.5%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단일 세부요인 중에서는 ‘투자 대비 효과(ROI)의 불확실성(17.6%)’이 1위를 기록했다.
이는 BIM 데이터 연계 실패는 기술이 부재해서가 아니라 데이터를 생성하는 자와 활용해 효익을 얻는 자가 일치하지 않는 구조적 모순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라는 게 건산연의 설명이다.

◼ 결론 및 정책・기술적 시사점
건산연은 사용자가 BIM을 활용해도 그 효익을 직접 체감하지 못하는 한 어떠한 대가 보전도 ROI 인식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없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활용 체감 기반 ROI 가시화 ▷시스템적 변화에 의한 데이터 흐름 구조화 ▷사용자 맞춤형 진입장벽 완화 ▷생태계 자생을 위한 소규모 R&D 지원 등 4개의 정책 축을 정립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향후 BIM 정책이 단순히 기술을 강제하는 규제 중심에서 탈피, 데이터가 산업 전반에 자연스럽게 흐를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번 연구를 진행한 정수완 건산연 부연구위원은 “BIM 정책 패러다임 전환의 핵심은 현장에서 데이터의 효익을 직접 체감하게 만드는 것에 있다. 형식적인 모델 제출 의무화에서 벗어나 데이터 흐름을 구조화하고 진입장벽을 낮추는 4대 축 중심의 입체적 정책 재편이 시급한 때”라고 말했다.
한국건설신문 황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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