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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증 생각 - 왜, ‘국가자격’인가

conslove 2024. 12. 27. 13:57

김태경 한국조경학회장

고등교육 수료한 학생에 재차 검증 필요한지 의문

‘시험’ 위한 기술보다는 ‘실용’ 위한 기술 추구해야

 

김태경 한국조경학회장

출근길과 퇴근길, 점심시간이 되면 늘 가는 식당, 퇴근 후의 참새방앗간이 되는 맥주집이나 피트니스 클럽, 주말이나 휴일의 시간보내기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런 행위를 우리는 일상이라고 한다. 이들 일상의 공통점은 쉽게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바꾼다는 측면에서, 일상은 비교가 안될 만큼 어려운 것이 '법'일 것이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행위를 규정하고 있기에 이것을 바꾸려면 모든 관계자들의 합의가 필요하기 때문일 텐데, 잘못되었거나 약점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지속하게 하는 것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관성까지 생겨버린 습관에 의한 작용 혹은 바꾸는 것에 적응하는 불편함 등이 원인일 것인데, 그런 면에서 보면 인간은 확실히 합리성이나 논리성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존재이다.

 

필자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4학년을 앞둔 겨울방학이 되면 의례적인 과정이 졸업설계팀을 짜고 기사자격증 준비반을 만들어 다음 해를 혹은 앞날을 대비하는 일이다. 평생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일이 그리 많지 않음에도 이것만은 빠뜨리지 않는 것을 보면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일임이 확실하다. 
필자의 일상에서 이것은 올해도 예외일 수 없기에 지난 주에는 학생들과 조교, 그리고 학과 교수들과 함께 모여 이것을 논의했다. 논의보다는 '언제부터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었지만, 논의를 하면서 다시 떠올린 생각이 있다. 

 

왜 '국가자격'일까? 아니 좀 더 적확한 표현으로는 왜 국가가 자격을 주는 것일까? 그리고 대학이라는 전문기관에서 교육을 받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왜 국가의 특정기관이 다시 검증을 하는 것인가? 활동공간의 대부분이 민간기업인 세상에 대해 왜 국가가 이런 일을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고, 대학교육을 믿을 수 없다는 의미가 깔린 것은 아닌지 궁금해진다.

필자 또한 학부생 당시 4학년이 되면서 기사자격을 취득했고, 다음 해에는 대학원에 진학했다. 기술사 응시자격이 되던 해에도 하나의 의무감처럼 시험에 도전을 했다. 시험 전에 약간 고민을 하긴 했지만 그저 형식적인 과정에 불과했고, 자격취득과는 관련이 없는 대학에 오게 되었다. 

 

왜 자격취득이 당연한 과정인 일상이었는지 당시를 돌아보면 시험에 대한 자신감 때문이 아니었나 한다. 한 살이라도 적은 나이에 시험을 본다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결정이 아닐 수 없었다. 체력이나 암기력 등등에서 절정기였을 테니까. 
대학에서 교육자가 되면서 자격소지자라는 약간의 자만심을 가지고 시험의 기술(?)을 학생들에게 전수를 했지만 이젠 그것이 자괴감으로 바뀌고 있다. 그런 감정이 언제부터 생겼는지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학생들의 수학능력이 점차 하락세를 보이던 시기인 듯하다. 
'유니버셜'한 인간으로 만든다는 대학의 본질이 바뀌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가 왔음이 확실해지면서 이젠 기술교육 혹은 직업교육이라도 확실히 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한 것이다. 그렇다고 대학 전체를 바꿀 수는 없기에 부분적으로라도 말이다.

 

프랑스나 스위스 등의 유럽 국가들이 시행하는 VET(vocational education & technique)는 교육과 자격제도가 발생시키는 결과물을 국가경쟁력으로 바꾸어 생각하면 아무리 봐도 매력적인 장치이다. 교육부에 한정되지 않은 학력인정과 특히, 부처의 전문성에 기반하는 자격인정은 고용노동부와 그 산하기관인 산업인력공단이 전담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 비교하면 왜 유럽인들이 합리주의자인지를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물론 우리가 노력을 하고 있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젊은 시절부터 출제, 채점, 제도개선 등에 관계하면서 내부의 지속적인 노력은 어느 정도 간접체험을 했었고, 그들의 노고는 충분히 인정할 만하다. 검정방식이 갖는 문제를 극복하고자 '국가직무능력표준(NCS)'이나 '과정평가형(CBQ)' 자격제도를 운용하는 등이 그러한 노력의 방증이다. 아직은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지금까지는 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좋아질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그 지속이라는 시간개념이 걱정이다. 인구감소의 속도는 이미 정해져 있으니 그 감속과 시대변화에 맞추는 대안이 필요하다는 점을 꼭 인식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하고, 대학은 물론이고 산업계와의 협력체계 구축도 필수적이어야 한다.

 

20세기 중반 미국의 심리학자인 매슬로우는 인간의 욕구실현을 5단계로 구분하여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려는 이론을 발표했었다. 우리에게는 '자기실현론', '인간욕구단계설' 등으로 번역되었던 이론으로, "인간은 자기실현을 향해 끊임없이 성장한다"는 가정을 통해 인간을 이해하려는 시도였다. 물론 과학적으로 증명된 적이 없어 행동과학에서는 사용되지 않고 있는 개념이다. 
필자는 행동과학자는 아니지만 그의 이론에 충분히 공감을 한다. 음식이나 물의 욕구(1단계)가 절실한 전쟁 중인 국가에서 4~5단계의 욕구인 자기존중의식, 창작욕 등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그의 이론에서 4단계인 self esteem은 성취나 통달 혹은 인식이나 인정 등을 포함하고 있다. 아마도 우리가 사회적 인정을 받기 위해 보유하고 있는 자격증이 여기쯤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수십 장의 자격증을 전리품처럼 나열하고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것은 욕구의 3번째 단계인 소속(belonging) 그리고 그 하위단계인 고용안정(safety)과 필연적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인간욕구의 하위단계는 상위단계보다 절실함에서 얻어지는 것이기에 '시험기술' 보다 '실용기술'이 요구된다.

 

국가의 일상이 되어버린 자격제도를 다시 한 번 생각하면서, 공허한 느낌이 없지는 않지만 몇 가지 질문을 던지며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대학생에게 기사자격을 시험으로 치르게 하는 것이 옳은가? 기사의 자격을 기술력 평가가 아니라 암기력으로 평가하는 것이 옳은가? 학원에서 배운 시험의 기술이 업계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가? 대학교육을 기술력과 결합시킬 수는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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